
오늘은 제주도에 가볼 만한
여러 전시회 가운데,
'노년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다루는
전시가 있어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별을
준비해야하는데요,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숭고한지
느낄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전시기간: 2024.3.20 - 2025.3.20
전시장소: 포도뮤지엄
주소: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88
운영시간: 오전10시 - 오후 6시 (마지막 입장시간 오후 5시 30분)
※매주 화요일 휴무

전시에는 총 열 분의 작가님이 참여하셨고,
이 분들은 노화 가운데에서도
특히 인지저하증을 통해
한 사람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고독의 순간을
예술적 시선으로 집중하셨다고 해요.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오늘날,
노년의 삶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 온기를 더하고
세대 간의 공감을 모색하고자 마련했습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전시 소개 중 일부 발췌
해가 느리게 지는 어느 겨울날
방문했던 전시는
글에 적힌 느낌 그대로
따뜻하고 위로가 가득했습니다.
전시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소개합니다.

전시의 시작인데도 불구하고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첫번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바탕화면>, 2024 - 알란 벨쳐

수년간 방치되었던 노트북을 다시 켠 것 처럼 깨진 이미지 파일들이 벽면에 즐비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한 때 존재했지만 더 이상은 기억해낼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무력감을 상기시키며,
'기억이 사라진 나는 더이상 나일 수 없는지'
묻습니다.
<밀실 1>, 1991 - 루이스 부르주아

<밀실 1>에서는 유년 시절 장기간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단절된 공간의 형태로 재현함으로써
관찰자와의 거리감을 팽팽하게 유지합니다.
이를 통해 '보호'와 '고립' 이라는
양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새들을 집으로 부르며>, 2018-2020
- 쉐릴 세인트 온지


어머니의 삶 속에서 가볍고 명랑한 순간들을 포착하기로 결심하고 손에 닿는 모든 카메라로 어머니의 모습을 기록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2015년 혈관성 치매를 진단받고
기억을 점점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사진작업을 중단하였다가
어느날 문득, 나른한 햇살이 창에 스며드는 오후에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를 기록하기로 결심합니다.
'메모리얼(Memo-Real)'이 추구하는
추모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는 전시입니다.
내 삶의 순간을
직접 혹은 타인의 시선을 빌려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
저는 그 기록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필요로 하는 어떤 순간마다 찾아와서
위로를 전달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수공기억>, 2008 - 정연두


아무도 관심 있게 듣지 않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수공'으로 기억의 장면을 재현하였다.
한 쪽 화면에서는 노인분들이
자신의 과거 기억을 구술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그 이야기들이 마치
무대 세트처럼 재구성 됩니다.
작가님은 이를 통해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넘나들며
다시 오지 않을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을
연극적인 세트 안에서
신기루처럼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메모리얼(Memo-Real)'은,
영상을 통해 노인분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비록 예술적인 장치는 부족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진심을
각자의 소중한 분들께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기억이 어떤 형태를 이룰 때>, 2024 - 민예은

소환 할 때마다 매 순간 왜곡되거나 재구성되는 기억의 본질적인 모순과 허구성을 탐구한다.
실내 공간의 모서리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고
벽과 천장에 향수가 짙은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불완전한 잠재의식 속 기억의 단편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작품입니다.
<재구성된 풍경 39>, 2022 - 데이비스 벅스



파괴의 흔적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상실,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 한다.
조각난 캔버스와 합판은 이전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합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풍경화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여전히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감동과 울림을 줍니다.
<끝없는 선>, 2024 - 시오타 치하루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해 온 무한한 텍스트들이 구조를 잃고 해체되면 무엇이 남을까?
길게 늘어진 선들 사이를
지나가는 경험은
분명 가벼운 실이라는 걸 알지만
압도되는 느낌을 줍니다.
무수한 실을 엮은 공간을 통해
작가는 생명, 삶, 죽음, 기억과 같은
보편적인 기억과 경험에 축적되는
무형의 감각을 전달합니다.
'메모리얼(Memo-Real)'의 자서전을
제작할 때마다 생각합니다.
텍스트 자체는 힘이 없다.
아무리 감동적인 이야기여도
글자에 담기는 순간,
평면적이고 납작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는
텍스트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과거의 장면을 재현하고
그때의 감정을 되새김질 하게 만들어
나에게 무한한 감동을 줍니다.
부모님들의 자서전을 읽는
자녀분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봅니다.
<Forget me not>, 2024 - 테마공간

100년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배롱나무가 포도뮤지엄 전시장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앉아서 보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공간을 200% 활용한
감각적인 전시였습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전시를 통해
상실과 이별에 대한 예술적인 영감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포도뮤지엄과 일몰
'메모리얼(Memo-Real)'에서는
조금 투박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있을
우리만의 기억을 담은 우리만의 예술작품을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진심을 기록하고 전달합니다.
제주도에 오시게 되면,
시간 내셔서 전시 한번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사진 찍기에도 좋고,
데이트 하기에도 좋고,
혼자서 사색하기에도 좋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순간에 대한 전시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는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이만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음과 이별 연구소'는 메모리얼(Memo-Real) 산하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이별하는 법에 대해 연구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아하는지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 시대를 위한 새로운 추모문화를 제시하고 선도하기 위한 연구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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